필리프 6세(Philippe VI)는 프랑스의 왕으로, 발루아 왕조의 첫 번째 왕이다. 그의 통치는 1328년에 시작되어 1350년까지 이어졌다. 그는 카페 왕조의 마지막 왕인 샤를 4세의 사망 이후 왕위에 올랐으며, 당시 프랑스의 귀족들과 왕실은 그의 즉위에 대한 후원과 반발이 뒤섞여 있었다. 필리프 6세의 즉위는 왕국의 안정성을 확보하고 새로운 왕조의 출발을 알리는 중요한 사건으로 여겨졌다.
필리프 6세는 왕위에 오르면서 여러 가지 중요한 정치적 결정을 내렸다. 그는 잉글랜드와의 전쟁인 백년전쟁(Battle of Hundred Years)의 초기 단계에서 프랑스의 군사적 대응을 단행했다. 1337년, 잉글랜드 왕 에드워드 3세가 프랑스 왕위를 주장하자, 필리프 6세는 이를 강력히 반발했고, 그러면서 프랑스와 잉글랜드 간의 갈등이 본격화되었다. 그의 통치 아래에서 프랑스는 군사 조직과 경제 구조를 강화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였다.
필리프 6세는 그 외에도 내정과 외교에서 여러 가지 정책을 추진하였다. 그는 중세 프랑스의 복잡한 귀족 체제를 관리하기 위해 다양한 귀족들의 지원을 받으며 정권을 안정시키고자 했다. 또한, 경제적으로는 전염병과 전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시기에 상인과 농민의 지지를 얻기 위한 정책을 시행하였다. 이러한 노력은 그의 통치 기간 동안 왕국의 재정을 어느 정도 회복시키는 데 기여하였다.
그러나 필리프 6세의 통치 기간은 어려움과 갈등이 가득 차 있었다. 백년전쟁의 발발은 프랑스 사회에 큰 영향을 미쳤고, 잉글랜드와의 전투에서의 승패는 필리프 6세의 명성과 왕권에 큰 도전을 던졌다. 1346년, 크레시 전투에서 프랑스군이 참패함으로써 필리프 6세의 통치에 대한 비판이 더욱 거세졌다. 그의 통치 말기에는 플래그 전염병인 흑사병이 유럽 전역에 퍼지면서 많은 인구가 희생되고, 이는 경제와 사회에 심각한 영향을 미쳤다. 필리프 6세는 1350년에 사망하였고, 그의 죽음 이후에는 그의 아들인 필리프 7세가 왕위를 이어받았다.